삼성전자, 4나노 ‘칩렛’ 기술 개발 성공으로 AI 반도체 시장 공략 나서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첨단 패키징 기술인 ‘칩렛(Chiplet)’ 표준을 적용한 4나노미터 초미세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칩렛 기술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등 서로 다른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기존의 단일 칩 설계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작은 칩들을 조합하여 더 복잡하고 고성능의 반도체를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필요에 따라 다양한 기능의 칩을 조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인 블루치타(Blue Cheetah Analog Design)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블루치타는 2018년 설립된 칩렛 전문 기업으로, 고성능 칩렛 인터커넥트 IP(지적재산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는 블루치타의 ‘블루링크스(BlueLynx) 다이-투-다이(D2D) 상호 연결’ IP를 삼성전자의 4나노 공정인 SF4X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이 기술의 핵심 성능은 매우 인상적이다. 블루치타에 따르면, 삼성전자 4나노 공정으로 생산된 블루링크스 D2D IP 기반 칩은 데이터 처리 속도가 초당 100테라비트(Tb)에 달한다. 이는 기존 기술 대비 획기적으로 향상된 수준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된 성능이다. 또한 표준 2D와 어드밴스드 2.5D 패키징을 모두 지원하여 다양한 용도에 적용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4나노 칩렛 기술은 시놉시스(Synopsys)의 기술 특허도 활용하여 초당 24기가비트의 고속 데이터 전송 속도를 구현했다. 이는 AI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필요한 대용량 데이터의 빠른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특히 GPU와 메모리 간의 데이터 전송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기술 개발의 의미는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선다. 칩렛 기술은 반도체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이다. 기존에는 모든 기능을 하나의 큰 칩에 집적해야 했지만, 칩렛 기술을 통해 각 기능별로 최적화된 공정에서 제조한 후 이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제조 수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설계 유연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삼성전자의 4세대 4나노 공정 SF4X는 AI 등 고성능 컴퓨팅(HPC)을 지원하는 기술로, 1세대 4나노가 양산된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이전 세대 대비 개선된 후속 배선 공정(BEOL)과 고속 동작 트랜지스터를 적용해 성능과 전력 효율성을 모두 향상시켰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수율 안정화에 성공하며 중국 AI 고객사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칩렛 기술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AI, 5G, 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복잡하고 고성능의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단일 칩의 크기와 복잡성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칩렛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칩렛 분야에서 경쟁사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3D(3차원) 패키징 기술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어, 반도체를 수평으로 쌓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수직으로 쌓아 집적도를 더욱 높이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더 많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기술이다.
블루치타와의 협력을 통한 테이프아웃(설계 완료 후 생산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 성공은 실제 양산 가능성을 입증한 것으로, 2025년 2분기 초 실리콘 특성 평가가 예정되어 있다. 이는 기술 개발에서 상용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계로,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등 중국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의 4나노 공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칩렛 기술의 성공적인 개발은 삼성전자에게 더 많은 수주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고성능과 경제성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칩렛 기술은 매우 중요한 경쟁 우위 요소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4나노 칩렛 기술 개발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기술적 성과를 넘어,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 시대에 필수적인 고성능 반도체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